단상

道란?

金 素軒 2008. 7. 21. 20:10

道란 그저 자연과 계절의 순환이고, 그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理致인데,

道란 말이 여러 의미로 쓰이게 된것은 儒敎에서도 道란 말을 썼기 때문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그 또한 道란 말을 썼기에 더욱 혼란스러운 결과가 되었다.

그로인해 儒道와 佛道, 仙道로 해서 저마다 다른 내용의 '도'를 주창하게 된것이다.

 

이는 '도'란 어휘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지면서,

진리 또는 세상의 참된이치와  동의어로서 '도'가 자리잡은 결과라고 하겠다.

儒佛仙은 각자 다른 가르침을 전하고 있지만 모두 '크나큰 가르침'이기에 종교라

하는 것이다.

이어 기독교가 들어와 세상은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유교는 세상이 험할수록 더욱 어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왔다 가는 세상이니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편하게 산다는 것이다.

선교(仙敎)는 저절로 존재하고 영원히 순환하는 세상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주 예수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유교는 仁이고 불교는 無常이며 仙敎는 自然이고 기독교는 信이라 하겠다.

 

老子가 말한 '道'의 참 모습, 즉 계절의 순환과 자연의 이치는

음양오행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자연과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인간들이 통찰했던 것들, 자연속에서 변하지 않은

그 무엇과 끊임없이 변해가는 그 무엇, 變不變의 이치를 정연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음양오행이다.

 

따라서 음양오행을 알게 됨으로써 '道'의 참모습을 알게 되고 그를 통해 한 세상

잘 살아 갈수 있는 실용적 호용, 더하여 有限한 삶에 대해 안따까워 할 것만 아니라

유한과 무한의 두모습을 함께 받아 들임으로써 마침내 그 두 경계를 초월하여 仙人의

경지로 들어설 수 있음이니.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나도 하늘과 땅은 존재 할 것이고 시간도 끝이 없는

天長地久다.

절로 존재하는 자연이고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이지만 너무나도 흔해서 그 값마저도 없다.

 

가을의 낙엽사이로 걸어보라,

바람이 불지 않아도 떨어지는 낙엽에서 무슨 무게가 느껴지는가?

낙엽사이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가벼운지를 느낄 것이다.

 

가을날 저녁 빈가지 사이에 걸린 소슬한 조각달이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련함을 비춘다.

겨울날 이른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그토록 향기로운 것은 이제 우리가

먼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절로 존재하는 자연과 시간이 우리와 끊임없이 交感한다.

천지와 자연이 교감하면서 산다는 것,

우리의 五官은 천지자연과 오고 감, 즉 통할 수 있는 문이니 그 문을 활짝 열어

젖혀야만 살아도 제대로 사는 것이다.

 

風流하는 마음,

그것은 세상에 처해 자유자재하는 정신이고 名利를 쫓다가도  時運이 아니면 다 떨쳐내고,

逍遙하는 達人의 경계로 들어 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풍류의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다 보면 절로 느끼고 절로 통찰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道다.

그리고 그길에서 어느 순간 유한한 삶이 바로 無限한 것임을 알게 되는 때가 오는 것이다. 

 

賢聖에서도 더하지 아니하며,

번뇌속에서도 어지럽지 않으며,

禪定가운데서도 고요하지 않으며,

斷도 아니고 常도 아니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여

본성과 형상이 여여하여 항상 머물러서

변천이 없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道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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