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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世紀 回想 丙午년 새해 70대 중반, 인생 황혼기에 접어드니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아스라한 추억이다.반세기 전 학창시절 維新 독재정권 퇴진과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로 휴교와 개강이 반복되었다.대운동장에서 스크럼짜고 데모하면서 최루탄가스에 억수로 눈물흘리고,수경사 탱크가 주둔한 인적이 끊긴 을씨년스런 안암동 캠퍼스를 회상하면서高大신문 창간 25주년 기념호에 기고한 낡고 빛바랜 拙稿를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悲劇의 終止符는 언제쯤'金安鎬(政外科)“思索이 있어야 할 곳에 함성이 있고, 탐구가 잇어야 할 곳에 정적이 있고, 상아탑의 진리가 있어야 할곳에최루탄과 페퍼포그가 난무하고 주인없는 깊은 침묵속에 잠긴 가을의 캠퍼스다....."얼마나 많은 눈물을 더 흘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야 ..
인연이란? 50여년 서울생활 정리하고 老年을 자연과 벗삼아悠悠自適 지내려고 한적한 당진으로 이사 온지 반년이 지났다.T.K에서 초중고를 다니다가 高2시절 X-mas 이브날대구 향촌동 중국집에서 대구여고생과 놀고,술마시고 나오다가 불량학생으로 시교육청 단속반에 걸려서 자퇴하였다.무작정 상경하여 그당시 신흥명문으로 소문난 신일高 편입시험에 합격하여3회로 졸업하고,대망의 高大 합격 기뻣다.靑雲의 꿈이 이루어 지는 것 같았다.안암동 하숙방에서 4년을 지내며 캠퍼스를 다니면서 72동기로 함께 입학한수십명 대구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졸업 후 80년대 초 K종합상사에서 商事맨으로 전세계를 누비고돌아 다니다가 회사 부도 & 거친 들판에서 山戰水戰 겪으며,생존을 위해 몸부림도 치면서 살았다.지나고 나니 시골 촌놈의 파란만장한 서울..
故한묘숙 여사 (1927-2017) 회고담 1990년 가을 북경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1950년 6.25전쟁후 40여년 적대적이었던 중국과 92년 정식 수교하였다. 그당시 상사맨들은 중국과 무역업무차 홍콩여행사를 통해 별지 비자를 받고 중국을 방문하였다.90년대초 C상장섬유회사의 무역담당 이사였던 필자도 중국산 시멘트 수입과 섬유무역을 하기위해 北京을 방문하면, 建國 호텔에 상주하고 계시는 여사님을 자주 뵈었다.자그마한 체구에 인자한 눈빛으로 다정다감하게 북한 방문 경험담을 예기해주신다. 그당시 금강산 국제그룹의 박경윤 여사와 함께 북한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여장부이다.소설가 한무숙 여사의 여동생이면서 미8군 군수기지사령관을 역임한 Whitecomb 장군과 재혼하였고, 남편이 돌아가신후 기념사업으로 재단을 만들어 6.25동란시 사망한 ..
춘천 "오봉산" 山遊記 오래간만에 통산 원정산행에 참가했다. 그동안 개인적인 일도 있었고, 2년간 코로나 여파로 모든 행사모임이 멈춤상태였다. 팬데믹으로 답답한 일상을 지낸 후 모처럼 단체 나들이다. 6/25(토) 아침 8시에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통산회원이 만나서, 대원관광 버스에 탑승한다. 경춘고속도로를 지나 11시경에 소양강댐 선착장에 B팀은 하차하고, 잠시후 A조는 배후령 입구에 도착하여 산행시작이다. 시작부터 가파른 등산길을 오르고 오봉산 1봉에서 5봉까지 로프 밧줄 구간이 수시로 나타나고 오르막 내리막이다. 능선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좌로는 화천 마실이 보이고, 우로는 소양호의 절경이 장관이다. 청평사 뒤에 솟은 돌이 많은 바위산이고 1-4봉을 지나니 기이한 자태를 뽐내는 청솔바위이다. 바위위에 자라는 ..
칠순(七旬)회상 올해가 대학입학 50주년이고, 53년생은 칠순이 된다. 입학 30주년행사를 계기로 72모임 (산악회 등)에 참석하기도 하고, 10여년전 대학 동기 카페에 70년대 “학창시절회상” 시리즈도 쓰고, “천영초(신방과, 서명숙-제주 올레재단 이사장-후배가 쓴 ”영초언니“주인공”) 동기에 관한 글도 남겼다. IMF 전후 하던 사업에 망가지고, 힘든 시절을 보내며 거의 회광반조(廻光返照), 두문불출 은둔 생활을 하였다. 나이 70에 접어드니, 생존의 물리적 시간은 유한하다. 예전에는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문일이다. "조정에서 돌아와 하루하루 춘의를 잡혀[朝回日日典春衣], 매일 강두에서 취하여 돌아오네[每日江頭盡醉歸]. 술빚이야 가는 곳마다 흔히 있지만[酒債尋常行處有],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
先親에 대한 회고 2007년도에 돌아가신 선친의 함자는 호(浩)자 규(奎)자 (字는 孟集)이시고, 경북 안동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1950년대에 안동사범에서 역사를 가르치셨고, 1962년도에 점촌중학으로 전근하시어 66년도에 교장으로 취임하시어 87년까지 21년 동안 교장으로 근무하시고 퇴임하셨다. 36년동안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겪으시면서 한평생을 보내신 분이시다. 8.15해방되던 해 안동농림을 졸업하시고 46년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하셨다. 안동농림 동기가 故이낙선(전 국세청장)씨 이고 1년 후배가 박정희 전대통령을총 쏜 김재규와 김계원(전 청와대 비서실장)씨 이다. 그당시 안동농림동기들이 출세를 위해 軍을 택한 반면 시골의 文을 숭상하는 가난한 선비집안에서 학문을 하고져 서..
[스크랩] 의성김씨 종손, 破落戶로 소문 난 金龍煥의 애국 김용환은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안동시에 현재 시가 200억원이 넘는 저택과 논밭을 가진 큰 부자였으나,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온갖 노름판을 전전하며 전 재산을 노름으로 날린 것처럼 행세했다. 실제로는 그 돈을 만주에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였..
해방 70년 감격과 반성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님 의 글) [이만열 특별기고]해방 70년, 감격과 반성 그리고 모색 이만열 | 전 국사편찬위원장 초등학교 1학년 때 맞은 해방, 아직도 기억이 뚜렷하다. 어른들을 따라 간 신사(神社) 마당에는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시골 어르신들이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 채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홍명희의 표현처럼 “아이도 뛰며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만세 만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편 높직한 곳에 자리한 신사가 불탔다. 화염에 싸인 신사를 보며 일제로부터의 자유가 현실화됨을 실감하는 듯했다. 심훈이 읊었던,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바로 ‘그날’을 어린 시절 경험했다. 나는 아직도 감격과 눈물 없이는 그날을 회상하지 못한다. 주일학교에 가서 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