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순국선열 愚軒翁

金 素軒 2008. 7. 24. 16:19

이현섭(李鉉燮, 1844-1910)

 

선생의 자는 瑞圭이고 호는 愚軒이며 본관은 延安으로 군위군 효령면 죽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였으며

언제나 의리를 생각하고 또한 이를 실천했다.

그리고 남을 위한 참된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과단성있게 처리하였다.

일찍이 각처의 여러선비를 찾아다니며 학문에 힘써 18세에 성균관에 진학하여

1885년 성균진사가 되었으나 갑오경장 다음해 평안도 철산리 사건으로

柳基鎬, 李晩應, 李明淵 등 영남 명유들이 유배될때에 형인

鉉懋와 함께 견책을 받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도산 양평에 은거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동지들과 더불어 상소를 받들고 대궐아래로 나아가서

결사 반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여

李晩燾외 여러동지들과 의병을 일으켜 일병과 매국노에게 항거하였다.

그후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나라 잃은 슬픔에 자결할 뜻을 갖고

"내 차라리 목이 잘릴지 언정 어찌 오랑케의 백성이 될까보냐"라는

시를 남기고 단식에 들어갔다.

자식들에게는 자신의 혼백조차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한 후 단식에 들어간지

21일만이 11월 26일(음10월 25일)에 자리에 않게 해 달라고 말한 뒤

의관을 갖추고 순국한 애국지사로 당시 '宣城三節"의 한 사람이라 일컬어 졌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고 <우헌실기>2책이 전한다.

 

 -2008년 5월 15일 군위에서 대전현충원으로 이장-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입관식-

 

 우헌고택과 죽리고택이 자리잡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원당은 竹裏의 아들 儉谷 이현무와

愚軒 이현섭, 長孫인 竹下 李麟永 양대 부자가 進士試에 합격하였으며,

이들로 부터 문집 10권과 유고를 남긴 유서 깊은 고장이다 .

특히 儉谷은 名著 <東史彙約>, <文獻博攷> 등을 남겼고 영남 疏事로 인하여 춘천에 유배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竹下는 영남 疏首 李晩孫의 사위로 문집을 남기고 있다.

세칭 '원댕이 이진사집'으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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