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종교에 대한 단상

金 素軒 2008. 7. 21. 19:59

 어릴적에 모친을 따라 절에 가서 대웅전에 참배를 하면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온게 40여년이 흘렀다.

반야심경, 금강경 책도 읽어보고, 고승들인 쓰신 법문과 悟道頌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깨달음을 느끼고져 애써왔다.

고3때 편입한 학교가 미션스쿨이라 매주 목사님 설교를 듣고 처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대학입시를 목전에 두고 71년 12월 크리스마스 예배를 영락교회에서 봤다.

그때 설교하신 분이 깁장환 목사님(극동방송 사장)인데 카리스마 넘치는 웅변조 설교에

감동을 받고 나중에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방한 하였을때  여의도 광장에서 통역하시는 모습에 열광하기도 했다.

또한 가수 조영남이 음대 졸업후 공군사병 복무중 영락교회에 와서 기타를 치며 여러곡의 찬송가를 부른 모습을 처음 봤다.

 

대학 재학시는 특별한 종교활동은 없이 다양한 관련책을 읽었다.

중국의 老.莊사상이 가르쳐준 `無爲自然`의 道를 동경하기도 하고, 서구의 히피족들의  사조인  허무주의(Nihilism)와 프루동과 바쿠닌이 주창하고 단재 신채호 선생과, 이회영선생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방편이자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을 내세운 무정부 주의(Anarchism)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애너키즘의 근본 이론은 老.莊철학에서 나온것이다.

중앙도서관에서 60년대 故 장준하 선생이 발간하신 "思想界'에서 다양한 서구  사상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정신을 배우고 , 故 함석헌 옹이 발간한 '씨알의 소리' 책을 읽으면서 퀘이커敎(Quakers)를 배웠다.

교리나 신학토론에 열중하지 않고 개인적인 신적체험을 통하여 '내면의 빛(The Inward Light)'을 추구하는 것, 일체의 외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은 자기의 영혼이 말하는 신의 목소리 즉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었다. 

東學의 人乃天과 事人如天 즉 사람이 곧 하느님이며 만물이 모두 하느님이라고 보는 평등사상과 천주교의 중심교리와 동등한 사상이란 것도 배웠다.

 

군복무시는 카츄사로 근무하면서 미군목이 설교하는 교회에서 주일예배도 참석하였다.

종합상사 근무시는 비즈니스로 아랍상인들 만나면서 이태원에 위치한  이슬람 모스크에서 엎드려서 예배하는 것도 참관하였다.

중동 출장시  이슬람 종교행사인 라마단, 하지 기간에는 해지기 전에 물만 마시는 종교의식에 힘들었다. 

아랍인들을 I.B.M People이라고 불렀다.

모든일은 알라신 탓으로 돌리는 인샬라(I)와 내일을 의미하는 부끄라(B) 그리고 Everything is O.K 를 의미하는 말레시(M)에 상담과 계약에 애를 먹기도 했다.

I.B.M 때문에 비즈니스에 골병도 들었지만, 알라신의 뜻으로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는 빈 라덴 일파와 자살 특공대를 보며  특히 광신이 무섭다는 걸 느낀다.

21세기에도 종교로 인한 국가간, 종족간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는데 이땅에서는 온갖 종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나라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神은 죽었다'고 하였지만 지금 세상은 신은 죽고 物神만이 활개치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다.

교회와 사찰이 날로  거대화, 상업화, 권력화 되고있다.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해야할 종교가 자본에 타락하여 일부 거대 종교단체가 이권싸움 또는 세습논쟁에 휘말리는 추태를 연출할 때 그러한 종교는 단지 좀더 세련된 물신에 지나지 않는다.  

 

Well-being 은 삶의 질 향상이다.

잘먹고 잘살기란 명분에 웰빙을 추구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ill-being 즉 '안녕하지 못함'이다.

그래서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고, 수행적 실천으로 명상, 참선, 丹 혹은 氣체조를 하기도 한다.  

영혼의 편안함과 마음의 안식처로 神에 의지하기도 하고, 삶의 고뇌를 해탈하기위해 종교를 갈망한다.

信心이 미약하고, 자유분망한 캐릭터로 어느 한군데 종교에 몰입하지 못하지만  가끔은 神의 뜻이 무엇인지 쿠오바디스를 찾기도 한다.

 

 

마음이 곧 부처 (卽心是佛)

紅塵으로 물든 사바세상에 떠나고 머무는데 미련을 두지않고 남은 여생을 삶을 관조하는 넉넉한 품성으로 보내고 싶다. 

 

世事浮雲何足問

(세상사는 뜬구름과 같으니 어찌 족히 물을수 있겠는가?)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정(酩酊)의 상상력  (0) 2008.08.01
순국선열 愚軒翁  (0) 2008.07.24
道란?  (0) 2008.07.21
후생가외  (0) 2008.07.21
Aging Power 想念  (0)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