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回想

학창시절 회상 3

金 素軒 2008. 7. 16. 22:37
72년 교양학부 시절 조기방학없이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진

1학기 종강 무렵,

이후락 중정부장이 김일성을 만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痛恨의 분단 역사를 끝내고 통일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김경원, 김하룡(정외과)교수님한테 질문했다.

'언론에서 발표한 것 처럼 통일이 곧 되느냐고?'

碩學인 두 교수님은 의구심을 가지고 뭔가 伏線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체제가 상이한 남북간 통일은 전쟁이 아니고서는, 남북 인민이 골고루 잘살때,

즉 西歐식 복지국가의 단계에 근접해야만 가능할 것이며,

그시기는 약 25년후가 될것이다' 고 한 대답이 기억난다.



곧이어 2학기 조기방학을 불러온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10.17 친위 쿠테타로 이어지고,

캠퍼스는 수경사 탱크가 차지하고,

단지 유신정변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뒤에 '7.4성명'은 휴지쪽이 되어 버렸다.

닫힌 교문 덕택에 科동기들과 내장산 단풍 구경하고, 전주시내 호스티스가 있는

비어홀에 들려서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신나게 놀았다.



그당시 어용언론들은 곧 남북이 통일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전두환 정권때 '평화의 댐' 소동도 정권 유지를 위한 Propaganda에

'서울이 물바다'가 되니 국민성금을 내야한다고 언론이 앞장서 춤을 추었다.

그때부터 친일파 지주, 자본가들이 운영하는 수구언론이 권력에 빌붙어

愚衆을 상대로 벌이는 교묘한 여론조작은 안 믿기로 했다.



85년 냉전시대에 업무차 공산국가 루마니아에 한달 머물렀다.

김일성과도 친한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아방궁을 짓고, 비밀경찰이 인민을 감시하고,

인민은 먹을 것이 없고, 술마시거나 마음대로 놀 자유도 없는

숨이 막힐것 같은 체제를 피부로 느꼈다.

독재자 아들은 체조요정 코마네치를 강간하여 그녀는 미국으로 망명하고,

결국 독재자 일가족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후 89년 12월 인민의 손에 처형되었다.

박정희도 中情밀실에서 연예인들과 대연회, 소연회를 수시로 하면서 농락하고,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다.

온갖 부귀영화와 쾌락을 즐기면서도 내일을 모르는 우매한 인간들이여!!!



공산주의 凍土에는 소매치기와 창녀는 없었다.

업무상 해외출장시

파리의 콩코드 광장, 뉴욕 맨하탄 5th Avenue에서 소매치기도 당하고,

모스크바의 인터걸, 上海와 Las Vegas에서 늘씬한 콜걸의 유혹도 받았지만

돈만 있으면 마음대로 즐길수 있는 이런 타락한 사회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천성이 Vagabond인 도덕성이 부족한 나는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퇴폐한 자본주의의 사치와 섹스문화가 그리운 종파분자다.

강남의 룸살롱과 방콕의 포르노 Bar가 그리운 속물 인간이다.



두분 교수님이 이야기한 사반세기도 지나고 34년이 흘렀지만

인민들이 골고루 잘사는 복지사회와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만도 억울한데,

남녘땅은 지역과 계층이기주의 그리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갈등이 끝이없다.



'나의 소원은 꿈에도 오매불망 통일...

한겨레 살리는 통일이 어서오기를...'



더 늙기전에 남녘의 인조 성형美人 말고

북녘의 순진하고 순수한 胎生的 美女를 마음대로 만나고 싶다.



구름을 만나면 비가 되는 존재이고 싶으나

그 시절도 세월속에서 서서히 주름을 남겨간다.

꿈을 노래하기엔 주어진 현실과 어깨가 너무 무겁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만물이 인연으로 인한 임시의 존재인 물질의 세계는 원래 空이요)

一葉落知 天下秋

(하나의 나뭇잎이 지는걸 보고, 천지에 가을이 온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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