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回想

학창시절 回想 -1-

金 素軒 2008. 7. 3. 20:40

39년전 안암동 캠퍼스 시절도 耳順 에 들어서니 아련한 추억이다.

70년대 긴급조치로 인해 인적이 끊긴 을씨년스런 안암동 캠퍼스를 회상하니,

故 이윤세 동기 (당시 72학번 학생회장), 박계동 (전 국회사무총장)이와 대운동장에서

최루탄 가스에 억수로 눈물 흘릴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어느 여학생이

퍼다준 양푼이 물에 눈을 씻으면서 울분을 삭인 그 추억, 그녀의 손길이 그립다.


'비극의 종지부는 언제쯤'

金安鎬(政外科 72)

'思索이 있어야 할 곳에 함성이 있고, 탐구가 잇어야 할 곳에 정적이 있고,

상아탑의 진리가 있어야 할곳에 최루탄과 페퍼포그가 난무하고

주인없는 깊은 침묵속에 잠긴 가을의 캠퍼스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더 흘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야

내 사랑하는 아들이 내품에 안길 것인가"
라고 하소연하는 동료 친구 부모의 고독한 부르짖음을

유신 독재정권은 외면해야만 되는가 !

우리의 데모는 西歐에서 일어나는 포만한 자유에 대한 지겨움에서

일어나는 Nihil 이나 Anarchy나 Decadent이 아니다.

불의를 보고도 묵묵히 참고 정당한 이유로서 질책할 경우에도 침묵을 지킨다면

현실에 대한 체념과 패배주의가 난무할 것이고,

출세와 치부에만 혈안이 되어 날뛰는 개인주의 적인 인간을 만들게 될것이다.....

시골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부모가 소 팔고, 논 팔아도 등록금 납부가 어려워 애간장을 태우고

하숙비 걱정을 하는데 부패한 권력층은 도둑놈촌, 정인숙사건을 일으키고,

재벌2세들은 미모의 여배우와 7공자 사건을 벌일때 總和는 이루어 질수 없다. ...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최루탄에 눈물을 흘려야 하고,

성북경찰서에 연행이 되고, 닫힌 교문때문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비극은 이제그만.
엄동설한이 지나고, 진달래 피는 봄은 우울이나 절망이 아니라

희망과 환희로 맞이하고 싶다.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始가 있으면 終이 있는법,

우리 이제 이만 비극의 고통을 멈춰야 겠다......'

 

-74년 10월 고대신문 창간 25주년 기념호에서-

世波에 찌들고 風霜에 부대끼면서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거울에 비춰보며
39년 세월이 흐른후 지금의 所懷.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知命者 不怨天)

나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知己者 不怨人)

현실은 가혹하지만 운명을 사랑하라.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겠는가

누군들 별빛같은 그리움이 없겠는가..........

그대가 가난해지면 친척들부터 그대를 멀리하고

벗들과 이웃들도 모두 그대를 외면하고 떠날지니! "

(체 게바라(1928-1967)의 詩에서)

승자는 運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인간의 최대한의 노력은 운명을 극복할 수 있으되

그 운명 자체가 지니는 최후의 섭리에는 미칠 수 없다.

천도를 즐기고 자기 분수에 몸을 맡기라 (樂天委分)

마음이 언제나 한가롭다. (心有常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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