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자본주의

1985년도 공산국가 루마니아 기행문

金 素軒 2009. 9. 29. 18:31

89년 독일통일로 동구라파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 공산국가 루마니아(Romania)를 85년 10월 방문하였다.

그 당시 적성국가 방문은 안기부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였다.

P회사에서 루마니아 정부에서 공급하는 이락 국방성 조달용 군복 및 군장비 납기에 차질이 있어 생산지도 겸 납품 독촉 차 긴급히 방문할 것을 요청하여 김포공항에서 KAL을 타고 파리공항에 도착하여 Air France 로 갈아타고 루마니아 부크레스트 공항에 도착하였다.

20여 시간 장시간 비행에 몸은 피곤하고 적성국가 방문이라 긴장되었으나 공항에 도착하자 프로토콜(Protocol, 외무성 의전관)이 대기하고 있다.

미국회사에서 현지 외무성 당국에 요청하여 비자도 공항에서 별지에 준다.

공항 세관원이 South Korea 여권으로는 처음 입국이란다.

그 당시 차우세스쿠 독재정권은 북한 김일성 정권과 돈독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84년 김일성이 루마니아를 방문하기도 하고, 인적교류도 활발하였다.

체조요정 코마네치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25시>를 쓴 게오르규가 태어난 나라에 한 달 가까이 머무르면서 느낀 점은 학창시절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막연한 환상과 호기심을 가진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환멸로 찾아온다.

주된 업무는 군복제조 공장을 다니면서 납기 독촉과 제품검사였다.

그러나 경직된 사회체계, 비효율적인 생산성은 납기를 독려할 엄두도 나지 않고, 이 체제는 결국 붕괴될 것이란 생각만 든다.

서울 봉제공장에서 200명이 하루에 5,000장을 생산한다면, 루마니아 공장에서는 2,000명이서도 이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배낭(Duffle Bag)공장에서도 수천 명이 근무하면서 감독관의 무능력과 근로자들의 나태로 인하여 생산성이 서울 공장의 1/10도 안된다.

생산 공장의 비능률은 끝이 없고, 납기는 계속 늦어지고, 발주처인 이락 조달청은 독촉하고 진퇴양난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인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나, 주인의식이 없는 인민은 게으름을 피우면서 시간만 떼 우려고 하지, 경쟁과 인센티브가 없으니 열심히 일하여 생산성을 높이거나 창조적 발상을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실패한 것은 인간 개개인이 이기심과 탐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쟁을 유발시키고, 이 경쟁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면서 또한 항상 승자와 패자를 만든다.

부크레스트 시내 최고급 호텔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레스토랑에 Dinner Open Hour 1700-2100이라고 입구에 붙여 놓았지만 저녁 8시경 들리니까 종업원이 손님을 받지 않는다. 저녁 9시가 근무종료이니 8시부터 청소하고 마감정리 한단다.

저녁시간을 놓쳐서 호텔방에서 삶은 계란과 굳어진 빵으로 한 끼를 떼 우기도 하였다.

또한 호텔 식사 때 제공하는 빵도 돌덩이 같고, 비프스테이크만 겨우 조금 먹을 수 있다.

시내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민들이 움직인다.

보통 오후 3-4시 되면 8시간 작업이 끝나 귀가한다.

납기가 늦었지만 규정상 연장근무는 있을 수 없단다.

서울에서 납기와 선박 Closing Time에 맞추기 위해 공장에서 여공들과 밤을 꼬박 새운 것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저녁 8시 이후면 시내거리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야간에 문 여는 식당, 슈퍼, 술집은 구경할 수가 없다.

흑백 TV는 저녁 5-9시 까지만 방영되는데 프로그램 대부분이 차우세스쿠 대통령 일족을 찬양하고 우상숭배만 방영한다.

밤이 죽은 유령의 도시.

차우세스쿠 일당과 일부 관료계급만 호의호식하고, 인민들은 굶주리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해버린 체제, 이것은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꿈꾸던 공산주의는 아니었다.

노동계급의 참된 이익을 반영한다는 공산주의가 인민에게 사회복지 보장은 예속으로, 직업은 반강제적인 노동으로, 예술과 문학은 획일성으로, 매스컴과 학교는 우상화의 전초기지로 변질해버린 일당 독재국가였다.

주말에 안내를 맡은 외무성 간부가 차를 몰고 교외에 있는 VIP 휴양소로 놀러갔다.

4시간 정도를 달리니 깊은 산속 전망이 좋은 곳에 휴양소가 나오고, 콘도, 바, 디스코텍 시설이 있다.

고급 당 간부만을 위한 전용 휴양시설 이란다.

인텔리인 외무성 간부 A도 호텔방에서 양주를 같이 마시면서 차우세스쿠 일당 독재 체제에 대한 반감이 많다.

비밀 정보 요원이 모든 조직에 퍼져있어서 마음대로 이야기도 못한단다.

전반적으로 물자가 귀한 상태라, 여유로 가져간 커피, 설탕, 치약을 선물로 주니 고맙단다.

통역인 20대 후반의 E 양도 5개 국어(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서방세계의 자유를 부러워한다.

한 달 동안 통역을 위해 붙어 다니면서 같이 돌아다니니 정이 들었는데 헤어 질 때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을 흘린다.

애초에 본사에서 3개월 정도 체류를 요청하였지만, 한달이 지나니 자유분방함에 익숙한 체질에서 틀에 박힌 단조로운 생활이 지겹고, 먹을 것이 없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하니 심한 감기 몸살이 걸리어 본사 중동직원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파리로 떠났다.

안내한 외무성 간부 A도 처음 만나는 한국의 자유로운 상사맨이 부럽다면서 공항에서 눈물을 흘리며 배웅한다.

그리고 당국의 우편물 검열 때문에 사신도 보낼 수 없으니 파리에 가거든 영국 친구한테 편지를 보내달란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차우세스쿠 독재자 일가족은 국민경제 파탄 혐의와 대학살의 죄목으로 인민의 손에 비참하게 처형당하였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제화공에서 공산당에 가입하여 정권을 차지한 후 일약 독재자가 되었으며, 국가 안전부 동원하여 반체제 인사에 대한 고문과 살인을 자행하여 공포정치를 감행하면서, 북한의 김일성 인민궁전을 본떠서 호사스런 아방궁을 짓고, 24년간 루마니아에서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가 부부 함께 총살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세속의 온갖 영화를 누린 독재자 가족의 비참한 말로를 보면서, 독재 권력의 허무함, 앞을 못 내다보는 인간의 어리석음,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체조 요정 코마네치도 독재자 아들한테 강간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안내한 외무성 간부 A는 차우세스쿠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그 후 90년대 루마니아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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